일만위순교자현양동산
무명순교자상

이 무명순교자상은 익명의 작가가 2001년에 제작하여 강화도 일만위순교자현양동산에 설치하였다. 작가에 따르면 강화도의 상징인 고인돌과 무명순교자를 연상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고 한다. 무명순교자상은 뒷짐을 진 듯한 모양새로 단두대 위에 목을 올려놓고 있다.

십자가는 누구나 지고 가기 싫은 법이다.

무명순교자상 역시 그랬을까? 어느 순간 십자가를 지기로 한 결심이 흔들릴까 걱정스러운 나머지 십자가를 등에서부터 가슴까지 관통시켜 놓았다. 십자가를 ‘지고가는 것’과 ‘안고가는 것’을 넘어 스스로의 몸에 꽂아버린 것이다.

강화도 현양동산에 위치한 실제 작품 아래에는 머릿돌이 두 개 있다. 그중 하나의 머릿돌에는 ‘이 모두를 받아들입니다’ 라고 새겨놓여 있다. ‘받아들임’은 아마도 무명순교자상을 통하여 작가가 말하고 싶은 주제가 아니었나 싶다.

또 하나의 머릿돌에는 ‘그대의 이름은…’이라고 적혀있다.

대부분의 성지는 어느 성인, 어느 순교자의 사연과 닿아있어서 많은 순례자들이 찾아와 묻고 배운다. 그러나 이곳 일만위순교자현양동산은 성지라기 보다 순례지이므로 오히려 순례를 온 ‘그대’의 이름을 묻고 있다. 잘 살고 있는지를…. 결국 일만위순교자현양동산은 순례자들이 자신을 찾는 곳이기를 희망한다.

무명순교자상 앞에서

이것이 마지막 방법이라는 듯이,
마치 아픈 자식이라도 끌어안은 듯이,
십자가를 자기 등에 꽂아 버린 무명순교자상 앞에 왔나이다.

주님, 제 완고함을 뜬금없이 흔들어주소서.
굳어있는 제 마음을 오늘 느닷없이 무너뜨려 주소서.
잔잔한 호수의 동심원처럼 저를 건드려주소서.

이득 앞에서 망설이고, 변화를 두려워하며,
속물처럼 사는 데 익숙했나이다.
‘받아들이기’ 보다는 가급적 모면하고, 대안과 자구책을 찾으며,
십자가 대신 저희를 보존해왔나이다.
심지어 이름조차 남기지 않은 무명순교자의 조각 앞에서도
십자가 외에 다른 길을 청하고 있나이다.

‘돌로 된 마음을 치워버리고, 살로 된 마음을 넣어*’주시는 주님,
남의 것으로 치장하고 꾸며왔던 저를 무장해제 시켜주소서.
요청한 것보다 필요한 것을 주시는 주님,
받아들이는 것이 믿음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소서.

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. 아멘.
(* 에제키엘 11,19)

일만위순교자현양동산
무명순교자상

이 무명순교자상은 익명의 작가가 2001년에 제작하여 강화도 일만위순교자현양동산에 설치하였다. 작가에 따르면 강화도의 상징인 고인돌과 무명순교자를 연상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고 한다. 무명순교자상은 뒷짐을 진 듯한 모양새로 단두대 위에 목을 올려놓고 있다.

십자가는 누구나 지고 가기 싫은 법이다.

무명순교자상 역시 그랬을까? 어느 순간 십자가를 지기로 한 결심이 흔들릴까 걱정스러운 나머지 십자가를 등에서부터 가슴까지 관통시켜 놓았다. 십자가를 ‘지고가는 것’과 ‘안고가는 것’을 넘어 스스로의 몸에 꽂아버린 것이다.

강화도 현양동산에 위치한 실제 작품 아래에는 머릿돌이 두 개 있다. 그중 하나의 머릿돌에는 ‘이 모두를 받아들입니다’ 라고 새겨놓여 있다. ‘받아들임’은 아마도 무명순교자상을 통하여 작가가 말하고 싶은 주제가 아니었나 싶다.

또 하나의 머릿돌에는 ‘그대의 이름은…’이라고 적혀있다.

대부분의 성지는 어느 성인, 어느 순교자의 사연과 닿아있어서 많은 순례자들이 찾아와 묻고 배운다. 그러나 이곳 일만위순교자현양동산은 성지라기 보다 순례지이므로 오히려 순례를 온 ‘그대’의 이름을 묻고 있다. 잘 살고 있는지를…. 결국 일만위순교자현양동산은 순례자들이 자신을 찾는 곳이기를 희망한다.

무명순교자상 앞에서

이것이 마지막 방법이라는 듯이,
마치 아픈 자식이라도 끌어안은 듯이,
십자가를 자기 등에 꽂아 버린 무명순교자상 앞에 왔나이다.

주님, 제 완고함을 뜬금없이 흔들어주소서.
굳어있는 제 마음을 오늘 느닷없이 무너뜨려 주소서.
잔잔한 호수의 동심원처럼 저를 건드려주소서.

이득 앞에서 망설이고, 변화를 두려워하며,
속물처럼 사는 데 익숙했나이다.
‘받아들이기’ 보다는 가급적 모면하고, 대안과 자구책을 찾으며,
십자가 대신 저희를 보존해왔나이다.
심지어 이름조차 남기지 않은 무명순교자의 조각 앞에서도
십자가 외에 다른 길을 청하고 있나이다.

‘돌로 된 마음을 치워버리고, 살로 된 마음을 넣어*’주시는 주님,
남의 것으로 치장하고 꾸며왔던 저를 무장해제 시켜주소서.
요청한 것보다 필요한 것을 주시는 주님,
받아들이는 것이 믿음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소서.

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. 아멘. (* 에제키엘 11,19)